즐거운 밀림의 노래 / 문정희
백화점마다 모피 세일을 한 후
거리에는 때아닌 짐승들이 밀려나와
소란을 떨었다.
빌딩사이로 밍크가 재빨리 사라지는가 하면
지하실에는 양 한 마리가 석간신문을 사고 있었다.
오리들은 남의 이불속 까지 숨어들었다지,
아이구 재미있어라, 심지어 악어들조차
젋은 계집애의 겨드랑이에 끼어서 이를 악물고 있었다.
뱀들은 요즘엔 주로 살찐 사내들의 허리를 노린다는군.
비야 오지 마라.
이 도시가 무서운 밀림이 되고 말리라.
나이 어린 여우 두 마리가 열렬히 교미를 하며
호텔문을 나서는 것을 보아라.
네거리에 멈춰선 자동차 안에도
신호등을 노려보는 낙타의 검은 눈이 있다.
주름살 수술을 하고 돌아가는 중년여자의
목을 애무하는 삵쾡이들.
쥐나 토끼들도 털을 세운 채
택시를 기다리는 청년의 호주머니를
슬슬 덮치고 있다.
그렇잖아도 짐승이 많아 늘 체증이던
이 도시엔 백화점 세일 후 퍼져나온 짐승들로
더욱더 스산해지고 있다. 정글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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