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그곳에 내가 있었네 / 조성진

칠부능선 2025. 5. 20. 14:59

긴 여행을 할 때는 공항 서점에서 책을 한두 권 산다. 뱅기 안에서 다 읽고 돌아오기 전에 지인에게 선물을 한다. 이것이 내 여행 습관 중 하나인데,

이번 보은 문학기행에서는 버스에서 책을 받았다. 손 안에 폭 들어오는 단정한 책이다. 당장 포장을 풀고 읽기 시작했다. 여행하며 여행기를 읽는 재미는 또 다르다. 치밀한 계획없이 무작정 아내와 세계일주를 떠난 패기가 부러웠다.

그 사연은 밤에 모두 둘러앉아 들은 긴 자기소개로 이해가 갔다. 그동안 겪은 정신과 육체의 과부하에서 탈출구가 필요했던 거다. 잘 살아내기 위해서 재충전이 갈급했다.

스마트 기기를 자유롭게 다룰줄 아는데도 불구하고 어려움은 있다. 체크 카드를 자판기에 두고 오고, 여행자증명서 때문에 손해를 보고, 파리에서 집시들에게 휘둘리며 곤혹을 겪는다. 그 모든 것이 지나간 자리에 경험과 지혜를 남겼을 것이다. 곳곳에 감사와 애틋한 마음을 품는 모습이 어엿하다.

아버지의 추억을 더듬는 자카르트를 시작으로 체코,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파리, 스페인을 거쳐 하바나까지 <쿠바를 떠나며 사랑을 알았네>로 마친다.

내가 못 가본 쿠바, '부에나 비스타 쇼설클럽'으로 대표되는 환상을 조금 깨고, 아니 그들의 시작, 그들의 관록이 그려진 쿠바의 민얼굴을 그려봤다. 가슴 싸하면서도 덩달아 따스함이 올라온다.

* 부족함을 안다는 건 가져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사치라고 했다. 스쿠버다이빙을 할 때마다 느끼지만, 물속에서는 내 몸이 젖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물속에서는 온통 젖어 있어, 그렇지 않은 것과 비교할 수가 없어서다. 쿠바는 그대로 나를 젖게 했다. 아니 그 속에 들어가 있어 내가 젖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 쿠바를 떠나며 쿠바를 사랑하고있다는 걸 알았다.

(202쪽)

* 언젠가 공항 가던 길 리무진 버스에서 무심결에 쳐다본 버스 창문에 적혀있던 글자, '천국제공'. 버스 창문에 크게 붙어있는 '인천국제공항'에서 앞 글자 하나와 뒷글자 하나씩이 절묘하게 커튼에 가려져 있었다.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읖조렸다. 다시 한번 '천국제공'.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는 나를 천국으로 데려다준다고 했다. (에필로그에서)

절묘하게 가려진 글자에서 의미를 찾는 모습이 든든하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그리는가에 따라 우리는 그쪽으로 향하게 되어있다.

조성진 작가가 환한 곳, 힘찬 곳을 향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리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