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류 속의 섬들 / 어네스트 헤밍웨이
<계간현대수필> 봄호에 김경주 시인의 연재글을 읽고 바로 주문했다.
500쪽 묵직한 책을 어제 그제 다 읽었다. 일주일 동안 인사동을 다니느라 책이 고프기도 했다.
벽돌책의 특징이 있다. 책장이 쉬이 넘어가지 않은 도입부다. 그러나 이 책은 아들 셋이 등장하면서 가속이 붙는다.
화가인 주인공 토마스 허드슨은 비미니 섬에 산다. 아쉬운 것 없는 풍요로운 삶이다. 작가 친구가 가까이 살고, 하인이 줄을 서 있다.
정기선으로 온갖 필요한 것을 공급받으며 황제(?) 같은 생활을 한다.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맘껏 그리고, 그림을 그려놓으면 파리의 화상이 와서 가져간다.
아이와 어른, 아빠의 친구 (작가 로저)와 친구 아들이 친구가 되어 자유롭게 대화하는 모습이 흥미롭다. 아니, 부럽다. 두 번 이혼을 하고 세 아들이 있다.
아들이 와서 바다낚시를 하며 엄청난 청세치와 벌이는 6시간의 사투를 보며 <노인과 바다>를 떠올렸다. 넘치도록 행복한 시간은 지나가고 각 엄마에게 돌아간다. 둘째와 세째 아들이 제 엄마와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떠난다. 토마스 허드슨은 고양이를 기르고, 술에 빠져지내다가 공군조종사가 된 큰 아들마저 잃는다. 술집을 전전하다 첫 부인과 만나 서로 위로하는 모습은 지극하다. 그후 그도 전장으로 떠난다. 전장에서의 모습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떠오른다. 개인의 행복보다 공동선을 위해 임무를 수행한다. 독일군 보트를 찾아 카리브 해안선을 누비다 독일군을 격멸했지만 부상을 당하고 돌아오는 장면으로 끝난다.
빙산의 일각만 보여준다는 헤밍웨이. 그의 경험과 정신이 녹아 있는 더 깊고 다양한 무엇을 그려보는 것으로 흠씬 젖어든다. 그래, 가진것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멋진 술꾼들이 용인되던 시대다. 이제 술꾼, 술고래가 사라져가는 시대가 되었다. 가볍고 명료한 글을 쓰려면 이면에 철저한 사상, 선명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 헤밍웨이의 다양한 경험은 가장 큰 무기다.
스페인 론다에서 본 노란집이 떠오른다. 헤밍웨이가 <무기여 잘있거라>를 썼다는 친구 집이 그대로 있다.
<이렇게 오탈자가 많은 책은 처음이다. ㅠㅠ 나중엔 오탈자를 찾는 것도 재미로. >
1부 비미니 제도
* "정말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나?"
"시도해 보지 않으면 모르지. 자넨(로저) 방금 전에도 정말 괜찮은 소설을 나에게 말해 주었잖나. 원한다면 써보게. 카누에서부터 시작하지." (87쪽)
* "술고래라고 불르지 않았어. 그냥 아빠에게 물어봤을 뿐이야. 술고래라는 단어에 나쁜 감정은 없어. 그냥 그런지 아닌지 궁금했을 뿐이라고."
" 나는 내가 제일 처음 번 돈으로 에디(집 요리사)에게 술을 사 줄 거야. 그러곤 같이 마실 거야." 어린 톰 (첫째 아들)이 거창하게 말했다. (104쪽)
* 그는 자신이 화가가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화가는 소재의 제약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직접 손을 움직여 작품을 만들고, 오랫동안 갈고 닦은 전문성을 살아 있는 작품으로 구현시키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로저는 무디어지고 잘못 쓴 탓에 완전히 빛을 잃은 얄팍한 지혜로 전과는 다른 새로운 길을 걷고자 한다. 이럴 경우 그는 밑바닥에서 아주 괜찮고 적절하며 아름다운 것을 찾아야만 할 것이다. (116쪽)
*그는 전보를 읽었다. ...
<귀하의 아들 데이비드와 앤드루 군이 어머니와 함께 비아리츠 부근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음. 귀하의 도착 시까지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을 예정이며 깊은 조의를 표함>
...
"아직은 어린 톰이 있어요."
" 지금으로써는." 토마스 허드슨이 말했다. 그는 처음으로 눈앞에 뻗어 있는 길고 완전하고 공허한 수평선을 내다보았다.
"곧 마음을 다잡으시게 될 겁니다." 에디가 말했다.
"그럼. 내가 그러지 못한 적이 있었나?" (217쪽)
2부 쿠바
* " 만약 제가 부자로 욕되게 살 수도 있고 가난뱅이로 정상적인 삶을 살 수도 있다면, 저는 가난뱅이 쪽을 택할래요. "
"그래서 우리가 너를 어네스트 빌이라고 부르는 거야" (301쪽)
* "우리가 왜 여기 나온 거지? 도덕 강의 하려고?"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당신이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가를 깨닫기를 바라기 때문에 나온 거예요.
" 당신이나 신이나 모든 것이 다 추상적이야. 나는 추상화가가 아니라고. 그냥 클루즈 로트레크에게나 가서 창녀촌 출입을 금하라고 하고, 고갱에게는 매독에 걸리지 말라고 하고, 보들레르에게는 일찍 집에 들어가라고 말해. 난 그 사람들만큼 착하지 않으니까. 제기랄."
"저는 절대 그럴 수 없어요." (351쪽)
* 그녀였다. (첫부인)그런 식으로 숙련되어 보이는 동시에 아름다운 자세로, 발을 내려놓을 때 자신이 마치 이 거리에 큰 선심이니 쓰는 것 같은 그런 동작으로 자동차에서 낼릴 사람은 그녀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수년 동안 그녀처럼 보이려고 노력했고, 또 실로 몇몇은 그녀와 아주 비슷하게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녀를 보면, 그녀를 닮은 모든 사람들은 단지 모조품에 불과했다. (336쪽)
* " 그 아이는 3주 동안 내게 편지를 쓰지 않았어요. 당신은 그 아이가 엄마한테 편지를 썼다고 생각하겠죠. 그 애는 항상 편지쓰는 걸 즐겼으니까."
......
"그 앤 당신을 너무 많이 닮았어."
" 그렇지 않아요" 그녀가 말했다. "말해 주세요., 그 아이, 죽었나요?"
"그래"
"나를 꼭 껴안아 주세요. 몸이 아파요." 그는 그녀가 떨고 있음을 느꼈다. (352쪽)
3부 바다에서
* "우리 모두를 위해서." 피터스가 말했다. "이 배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나?"
"아라" 토마스 허드슨이 말했다. 그는 주변을 돌아보면서 처음으로 럼주를 홀짝였다. "그리고 이 배에 타고 있는 빌어먹을 선원 전부 다."
"자네들 위하여. 톰." 피터스가 말했다.
"위하여." 토마스 허드슨이 입안에서 그 단어들이 식어 가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이어폰의 왕을 위하여" 그는 잃어버린 말들을 주워 담기 위해 계속 말했다. (437쪽)
* " 내가 술을 먹든 말든 그 일을 가지고 자네 기분이 바뀌지는 않았으면 해."
" 알겠네, 톰. 하지만 말이 다른 말 등에 올라탄 것처럼 자네가 자네 자신 위에 올라탄 꼴은 보기 싫어. 차라리 켄타우로스 같은 건 어떤가?"
"켄타우로스는 어떻게 알았나?"
"책에서 읽었지. 토미. 나도 배운 사람이라고. 경험한 것 이상의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
" 자넨 정말 훌륭한 개새끼로군. 얼른 가서 내가 시킨 대로 하고."
" 그래, 토미. 이 항해가 끝나면 음식점에서 자네가 그린 바다 그림을 하나 사도 되겠나?"
" 헛소리 하지 말게." (489쪽)
* 전쟁이 끝난 후,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될 날을 생각해 보자. 그릴 만한 좋은 것들은 정말 많이 있을 것야.
전력을 다해 그림을 그리고, 또 그 외에 다른 어떤 누구보다도 잘 그릴 자신이 있어. 이제부터라도 진정으로 하고픈 일에 굳게 매달리자. 그러려면 반드시 살아야 해. 한 인간이 이루어 낼 수 있는 업적에 비하면 생명조차도 하찮은 것이 아니던가. 그래 놓치지 말자. 지금이야말로 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진짜 기회가 온 거야. 일단 살아 남자..... 우리는 룸펜 프롤레타리아가 아냐. 우리는 정말 최고이고 , 아무런 대가 없이 일을 해냈어. (504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