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저녁의 두부 / 서숙희

칠부능선 2022. 2. 14. 08:58

저녁의 두부

서숙희

 

 

두부를 만지는 두부 같은 저녁은

적당하게 무르고 적당하게 단단하다

꾹 다문, 입이 몸이고 몸이 입인 흰 은유

 

으깨져 닫혀버린 축축한 기억들

경계도 격정도 고요히 순장되어

창백한 무덤으로 앉은 한 덩이 직육면체

 

잔뼈처럼 가지런한 알전구 불빛 아래

표정 없이 저무는 식물성 적막 속으로

수척한 자폐의 저녁이 허기처럼 고인다

 


-《시조21 》2021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