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역행 / 권영옥
칠부능선
2022. 1. 25. 19:53
역행
권영옥
한 화분에 베고니아 두 포기가 포개진 걸 사왔다
물 주고 영양제를 주어
둘은 밤마다 이슬 적시는 놀이에 빠진 줄 알았는데
시샘하고 밀어내어
한 포기가 명경을 포기한 얼굴을 하고 있다
전생의 악연이 내외라는 말처럼
너희도 몸 속에 낯선 생각을 품고 이곳으로 왔구나
보이지 않게 뿌리와 뿌리가 자리다툼을 해서
한 꽃이 수렁 냄새를 풍긴다
몽글하던 외피가 겹겹 비늘에 싸여
서로에게 단맛이 되지 못하는 운명은
일찍 한 쪽을 저물게 한다
'겨울길'*에서 신부가 청년의 운명을 바꿔
한 청년이 파란 낙엽이 되고.
한 청년은 로맨스를 얻었다지, 풀밭을 얻었다지
가을 속에 서 있는 나는 잎 속에 담긴 빛을 모르고
눈앞의 그림자만 보인다
영혼의 발부리가 어둠에 닿은 탓이다
운명은 왜 한쪽으로만 편입되려 하는지
큰 화분에 베고니아를 옮겨심고 물을 준다
밤사이 우주가 꽃잎 위로 명경을 톡 떨어뜨린다
봄에는 꽃들의 운명을 바꿔주는 숨은 영도자가 있다
*푸시킨의 시 '겨울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