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두 번째 줄 / 김승희
칠부능선
2018. 6. 29. 22:22
두 번째 줄
김승희
나는 늘 두 번째 줄에 서서 살아왔다
누가 일부러 시켜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비켜라! 그렇게 누가 험악하게
소리를 쳐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너는 세상의 첫 번째 줄에 설 수 없다는 그런 명령을
딱히 받은 기억은 없다
그 보다도 더 나는
두 번째 줄이 내 자리라는 생각
두 번째 줄이 나에게 마땅하다는 느낌
너는 결코 첫 번째 줄이 아니라는 그런 의식이
나에게는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것에는 아픔이 없다
자연스러운 것에는 질문도 없다
자연스러운 것에는 의심도 낙남도 없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두 번째 줄에 서서 염소처럼 산다
물에 빠진 사람은 누구나 허우적대며
물 위로 올라오려고 필사적으로 헤엄을 칠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물 밖으로 나와야 목숨을 건질 것이다
그리고 맙소사! 늘어진 해파리처럼
두 번째 줄은 아마 떠오르기에 너무 늦은 줄인지도 모른다
월간 《현대시》 2018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