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박노자와

칠부능선 2017. 8. 15. 12:42

 

   박노자는 서구중심적 세계인식을 '하얀 가면'이라 했다.

   '위'를 흠모하다 보면 '아래'를 쉽게 짖밟을 수 있다고 한다. 뜨끔하다.

 

  연신 고개를 끄덕였지만 한정된 시선도 느낀다.

  우리가 러시아를 좋아는 게 아니라 러시아문학을 좋아하는 것에 대한 오해가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광적인 수구주의,, 뒤틀린 사상이었지만 천부적 재능은 위대한 작가로 만들었다.

  이광수나 서정주의 친일 행적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문학이 살아남은 것과 같이.

 

  한국인들의 노벨상에 대한 지나친 애착은 노벨상 컴플렉스다.

  특히 몇몇의 노벨평화상은 살인마에게 준 것이다. 베긴, 키신저, 루스벨트... 처칠.

  종족우월성, 종교, 에 사로잡힌 이들이 일으킨 전쟁이 지금도 포화를 날리고 있다.

 

  반항적인 폴란드 국민성과 우리의 국민성 같다는 대목에서 프라하를 떠올렸다.

, 영국이 인도에서 한 짓과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한 짓도 같다고.

 

  식민지 조선에서 광화문을 철거하겠다는 총독부의 망동에 공개적으로 반대한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 '야나기 무네요시'가

  조선을  '슬픔과 몰개성의 나라'로 본 것처럼,

  중국의 티베트로 진출한 것이 무력점령이었다는 것을 인정한 중국의 양심적 소설가 '왕리슝'도

  식민지 티베트는 '신비와 공포'의 나라로 본다.

  둘 다 본질을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호의적이기는 하지만 시선은 위에 있다.

 

  침략의 이면을 바라보는 세계사다.

  교과서에서 배우지 않는, 신문에 나지 않지만 지금도 자행되고 있는 침략사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 는 김수영의 말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현대 한국에 있는 '부패 문화'의 싹을 키운 것은

나라를 군벌의 소유물로 만든 친미 권위주의 정권이었다는 사실은 외신에 절대 보도되지 않는다며 아쉬워하지만

 

우리나라 동학운동에 대한 인식에는 아쉬움이 있다.

 

 

 읽어보고 싶은 책이 몇 생겼다. 러시아어로도 번역되었다는 강경애의 <인간 문제>,

네덜란드의 에두아르드 데커(필명 몰타톨리)의 <막스 하벨라르>

 

 

 

거의 20년 전 사진이렸다. 풋풋한 시절이다.

최근 유투브를 보니 수염을 기르고 완전 러시언스타일이 되었다. 말보다 글이 알아듣기 쉽다.

 

 

          며칠 이 흑백시대에 푹 빠졌다.

          '자유'란 무엇인가. 나의 모든 것에 대한 나의 선택권이다.

          '하얀 가면'은 벗겨졌다. 아직 침략의 잔혹사는 곳곳에사 진행중이다.  미워하면서 배우는 일은 없어야겠다.

 

 

          빼앗긴 주권을 도로 찾은 날이다. 스스로 찾은 건 아니지만 ...

          비가 온다. 건배를 하러 나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