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내기
그래,
아무리 마음이 아프고 무거워도 밥을 먹는다.
'산生자, 살아있는 자의 비애다.
마감을 맞춰 원고를 보내고,
(작년에 펑크 낸 글이 많아서 올해부터는 무조건, 쓰리라 마음 먹었다.)
일단, 숙제를 마쳤으니 오늘은 가벼운 책을 읽으리라.
10개의 테마로 끌어낸 유럽의 곳곳에 발을 디뎌보리라.
사랑을 부르는, 직접 느끼고 싶은, 먹고 싶은, 달리고 싶은, 시간이 멈춘, 한 달쯤 살고 싶은,
갖고 싶은, 그들을 만나러 가는, 도전해보고 싶은, 유럽 속에 숨겨진 유럽.
테마를 옮겨 적고 보니 대강 그림이 그려진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만나게 될 것도 같고, 오늘은 여기에 빠져야지.
역사와 풍광만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책에서 인용한 글들이 좋다.
철학의 돈키호테, 이반 일리치를 인용한 부분이 특히 좋았다.
진정한 특권층은 사회가 제공하는 모든 특권을 다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어떤 특권도 자유의지로 거절할 수 잇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동의한다.
* 시간에는 세 가지가 있다.
삶을 살아가는 시간, 삶을 증언하는 시간, 그리고 무언가를 창조하는 시간.
- 알베르 카뮈
*봄이 얼마나 잔인한 계절이라는 걸 노부부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들은 봄기운이 시키는 대로 한다.
영감님은 오늘처럼 밝은 햇볕 속에서 베갯모 수를 놓고 있는 처녀를 담 너머로 훔쳐보던 옛날얘기를 한다.
마나님은 귀가 좀 어둡다. 행복해 보이는 표정으로 미루어 저 영감이 또 소싯적 얘기를 하나 보다 짐작하고
아무려면요, 당신 한창땐 참 신수가 훤했죠, 기운도 장사고, 이렇게 동문서답을 하면서 마나님은 문득
담 너머로 자신을 훔쳐보던 잘생긴 총각과 눈이 맞았을 때처럼 가슴이 울렁거린다.
그렇게되면 이건 동문서답이 아니다. 아무려면 어떠랴. 지금 노부부를 소통시키고 있는 건 말이 아니라
봄기운인 것을.
- 박완서, <속삭임> 중에서
젊은 작가 정여울이 이런 구절을 뽑아낸 것이 이쁘다.
봄은 오래전부터 잔인했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