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허물 / 이어령
칠부능선
2008. 6. 29. 19:17
허 물
- 이어령
몰래 보면 볼 수가 있다.
이른 아침에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이슬내린 어두운 숲으로 가면
매미가 허물을 벗고 매미가 되는 것을
뱀이 허물을 벗고 뱀이 되는 것을
나무들이 허물을 벗고 나목이 되고
바위가 허물을 벗고 구름이 되고
강물이 허물을 벗고 비가 되는 것을
몰래 보면 볼 수가 있다.
허공 속에서
허허 벌판에서
허허 웃으며
허물 벗고 내가 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