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 고정희

칠부능선 2007. 7. 5. 12:25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고정희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목을 길게 뽑고

  두 눈을 깊게 뜨고

  저 가슴 밑바닥에 고여 있는 저음으로

  첼로를 켜며

  비장한 밤의 첼로를 켜며

  두 팔 가득 넘치는 외로움 너머로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기다림이 불이 되는 날

  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

  그 불 다 사그러질 때까지

  어두운 들고 산굽이 떠돌며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그 만큼 어디선가 희망이 자라오르고 

  무심히 저무는 시간 속에서

  구군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밤,

  나는 너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서

  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렸다

  수없는 나날이 셔터 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꿈의 현상소에 당도했을 때

  오오 그러나 너는

  그 어느 곳에서도 부재중이었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바람으로 흩어지는 너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