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 - 발표작 150

어느 날 무심히 / 노정숙

어느 날 무심히 노정숙 화원에서 남천을 데려왔다. 대나무풍으로 미끈한 일곱 가닥 줄기에 적당히 뻗은 이파리가 날렵하다. 동양화를 보는 듯, 한가로워 자주 눈길을 주었는데, 우리집에 온 후로 새로 난 잎이 넙데데하게 자란다. 크지 않은 분재 화분에서 마디게 자라는 성질을 잊어버린 듯하다. 튼실하게 자란 새잎이 원래 있던 잎과 부조화다. 누울 자리를 보고 발 뻗는다고 마구잡이로 자라도 자르거나 휠 줄 모르는 주인이란 걸 알았나 보다. 그 화분에는 빨간 버섯도 살다 가고, 화분 위로 살짝 나온 뿌리에 비로드 같은 이끼도 자란다. 어른 허리께 넘는 남천은 줄줄이 피는 하얀 꽃도 건너뛰고, 가을이 깊었는데도 단풍 들 기미도 없이 푸른 새순들만 올라온다. 움트는 연록 잎은 어린 새가 먹이를 향해 부리를 벌리는 모양..

시간의 힘 / 노정숙

시간의 힘 노정숙 시간의 바람 앞에 흔들리던 촛불이 꺼졌다. 아버님께서 요양원 생활이 1년도 안 되었는데 갑자기 돌아가셨다. 중환자실을 몇 번 드나들었지만 그때마다 바로 회복하셨고, 그날도 아침식사를 조금 하셨다는데… 불효막심이다. 80세 넘도록 오토바이를 타신 아버님은 모든 것을 말로 전하면 즉시 이루어졌다. 말년에는 청력이 떨어져 글로 전하기도 했지만, 어떤 일에도 당신이 우선인 모습으로 94년의 생을 마치셨다. 근엄했던 삶에 비해 죽음의 의식은 간결하고도 순조로웠다. 한줌 재가 되는 과정도 디지털 화면의 숫자가 조용히 알려줬다. 아버님을 모시고 간 첫 번째 병원 응급실에서 하시는 이야기를 듣다보니 사후에 대한 당부 말씀이었다. 얼른 휴대폰을 꺼내 녹음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띠, 띠, 띠’ 의료기구..

나를 받아주세요 / 노정숙

나를 받아주세요 노정숙 elisa8099@hanmail.net 나 삼문 벼랑에 섰습니다. 내가 먼 곳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접한 사람 중에는 왜 하필 바쁜 시간에 부고訃告냐며 투덜대는 이도 있을 테고, 잠시 추억을 더듬으며 가슴이 저릴 사람도 어쩌다 있겠지요.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지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철든 후 내 생은 눈치보기의 연속이었지만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어림없는 일이지요. 내가 떠나는 자리를 찾은 벗에게 두 번의 절은 받고 싶지 않습니다. 언제나처럼 슬쩍 웃고 있을 내 영정사진을 보며 혀를 차는 대신 함께 씨익 웃어주길 바랍니다. 축제 같은 이별식이면 더 좋겠습니다. 잔잔하게 읊조리는 연도나 성가가..

의문과 확신 사이 / 노정숙

의문과 확신 사이 노정숙 인간이 죽음을 마무리하는 방법은 동물보다 못하다는 걸, 아무리 좋은 소리도 누가 어디서 말하느냐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진다는 걸 말하며 철학자는 묻는다. “무슨 말인지 알죠?” 사랑이 행복이고 이별이 불행이라는 공식이 개소리라는 걸, 짝사랑은 스토킹이고 미저리라는 걸, 사랑이 구속이고 이별이 자유일 수 있다는 걸 알려주면서 자꾸 묻는다. “무슨 말인지 이해되시죠?” 거대한 뿌리는 진창에서 뿌리를 내려야 가지를 뻗을 수 있다는 걸, 꽃은 지는 걸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걸, 말로 한 고통은 고통이 아닌 걸, 글로 쓴 고통도 이미 고통이 아니라는 걸 말하며 또 확인한다. “무슨 소린지 아시겠죠?” 그럼 알다마다. 확신에 찬 철학자의 돌직구 ‘죽는다’를 ‘디진다’고 말해도, 다 안다. 돌아..

신풍속도 / 노정숙

신풍속도 노정숙 조카가 우리 부부를 집으로 초대했다. 제 형과 사촌 부부도 함께. 고모라고 해야 10년 남짓 차이나니 조카들 모임에 끼워준 거다. 뷔페음식으로 준비한 상차림은 산뜻하고 푸짐했다. 손님을 초대하면서 노동을 최소화한다. 집들이를 해도 식사는 식당에서 하고 다과만 집에서 하는 게 다반사다. 이건 오래된 신풍속이다. 요즘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음식점과 카페로 돌던 모임을 집에서 한다. 자발적으로 하지 못했던 소박한 삶으로 회귀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명절에나 만나게 되는 시어른도 부담스러운 세상에 조카와 조카며느리들도 나이가 드는 걸까. 휴식이 필요하다나, 그 휴식의 자리에 불러준 걸 보면 나는 시어른이 아닌 거다. 만만한 고모인 게 좋다. 앞으로 분기별로 돌아가며 집에서 모이..

이별의 무게 / 노정숙

이별의 무게 노정숙 비오는 일요일 저녁, 한 사람을 생각하며 탄천을 걸었다. 내일이면 그의 육신은 한줌 재가 된다. 육신이 있을 때 마지막까지 열려있는 감각이 청각이기에 망자 곁에서 나쁜 말을 삼가라고 했다. 그러나 세상의 입은 여러 방향에서 나팔을 불고 있다. 대책 없는 언어 테러다. 실상 죽음을 담보해서 얻을 것은 하나도 없다. 죽음 후에도 선업은 회자되고 죽음으로서 악행이 묻힐 수 없고 문제는 계속된다. 그동안 참담하고 황망한 죽음을 많이 보았다. 세상에 나서 꽃봉오리를 터트리지도 못하고 져버린 꽃들, 한순간에 꺾인 곧고 우람한 나무들, 울울창창한 숲이 통째로 타버리기도 했다. 저마다 귀하게 숨탄것들이 제 몫의 쓰임을 다하지 못하고 스러질 때 참으로 애통했다. 사람의 이름이 고유명사가 되면 그 사람..

반갑다, 은수야 / 노정숙

반갑다, 은수야 노정숙 세계 일주를 하고 온 마을버스 은수를 만났다. 오래전부터 50대가 되면 여행가의 길을 걷는 게 소원이던 임택 씨는 꿈을 이루기 위해 경제생활에 전념하면서 체력을 키우고, 영어를 준비했다. 평창동 언덕길을 헐떡이며 올라오는 마을버스, 좁고 가파른 길을 다니며 사람들을 큰길까지 데려다 준 다음 산동네로 되돌아오는 기껏 해야 2차선 도로를 달리는 종로12 마을버스의 인생이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은수교통’ 출신인 그에게 ‘은수’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넓은 세상으로 함께 나가기로 작정했다. 677일 동안 48개국을 다녀온 대견한 은수가 지금은 국내 오지를 다니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잠시 쉬다가 21차로 삼척 일대를 향한다. 《마을버스, 세계를 가다》라는 책으로 먼저 만나서인지 임..

은수, 날다 / 노정숙

blog.naver.com/sidong6832/222076770392 은수, 날다 ㅡ 노정숙 시인[공정한시인의사회202009] ​ ​​​은수, 날다​​​​ 종로12번 마을버스 폐차를 앞둔 어느 날 세상을 날고 싶은 새 주인을 만나 은... blog.naver.com 은수, 날다 노정숙 종로12번 마을버스 폐차를 앞둔 어느 날 세상을 날고 싶은 새 주인을 만나 은수라는 이름을 얻고 세계 일주를 시작했네 헉헉대며 오르던 언덕길을 버리고 우유니 소금사막, 멕시코 모래벌판 타임스퀘어, 사하라 아우토반, 지도에 없는 길까지 달리고 달리다 울컥울컥 까무룩 정신 줄을 놓으면 어디선가 번개같이 검은 얼굴 흰 얼굴, 노란머리 고수머리 인간 형상을 한 천사가 나타나 어르고 달래주었네 낡은 몸에 새 날개를 얻어 그렇게 67..

열반지에서 / 노정숙

열반지에서 노정숙 열반지에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인천에서 홍콩을 거쳐 뉴델리로, 뉴델리에서 하루를 어정거리고 콜카타로 날아갔다. 콜카타에서 한없이 연착되는 기차를 타고 부처님의 득도지인 보드가야를 돌아보고, 흙먼지 날리는 버스를 타고 터만 남은 나란다 대승불교대학을 지나, 죽림정사와 영취산을 돌아 쿠시나가르에 닿았다. 부처님의 행적을 더듬으며 열반지에 다다르니 그동안 다닌 곳 중에 가장 소박하다. 가난하고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열반하신 뜻은 보이는 겉모습에 얽매이지 말라는 가르침이라고 한다. 상아빛 둥근 모양의 열반당과 뒤편에 대열반탑이 있다. 열반당에 모셔져 있는 열반상은 히라냐바티 강바닥에서 발견된 것을 복원한 것이다. 미얀마 불자들이 금칠을 했고 그들이 관리하고 있다. 오른손을 얼굴에 대고 모로..

2020, 재난일기 / 노정숙

2020, 재난 일기 노정숙 2월 7일 딸의 성당봉사 교사연수 2박 3일이 연기되었다. 그때 손자들을 봐주기로 했는데 아쉽다. 감염병 위기경보, 경계 단계다. 2월 12일 친구 부부와 오래전에 예약해 둔 〈여명의 눈동자〉를 보러갔다. 식당과 카페가 한산하다. 자연스럽게 거리두기가 되었다. 세종문화회관은 한 쪽 입구만 열고, 손 소독제와 마스크를 준비해두었다. 객석이 절반 정도 찼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신탁통치, 한국전쟁 직후의 격변기를 치열하게 살아낸 이들의 이야기다. 역사의 흐름, 그 앞장에 선 사람은 역류에 휘말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용기와 희생으로 역사는 앞으로 나아간다.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는 기립박수를 받을 만했다. 우리나라에서 ‘코로나 19’로 죽은 사람은 없다. 새롭고 강한 독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