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사람이랑 848

요즘

식구가 늘어서 절간 같던 집이 정신없이 북적인다. 일본에서 외손주와 딸이 와 있으니 4대가 한지붕 아래 있다. 아버님 말씀에 의하면 "우리 아이들은 외할머니가 다 키워줬다." 친정에서 늦둥이인 내가 아이를 낳았을 때, 우리 엄마는 오직 우리 아이들 한테 전력투구하셨다. 조카들은 이미 다 크고, 엄마가 돌봐줘야 할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 어릴 때 오셔서 봐주거나, 일주일 정도씩 데려가서 봐주셨다. 그러나 지금 내게는 달린 식구가 너무 많다. 시답잖은 글도 써야하고, 가끔씩 딴짓거리도 해야 숨통이 트이고, 아직은 흥미로운 공부도 해야 하고. 어쩔수 없는 날라리 할머니가 되겠지만... 하는데까지 열심히 해 볼 생각이다. 십삼 개월 된 이 녀석, 아직 말 문도 안 열린 이 천사는 내 속을 다 아는 것 같..

40년 만에 만난 선생님

중학교 2학년때 담임선생님을 찾아 뵈었다. 그때 같은 반 친구 둘과 함께. 정년퇴임하시고 김포에 절을 지으시고 스님이 되셨다. 77세 되신 선생님은 예전보다 더 맑은, 아기같은 얼굴이다. 국어 선생님답게 세상 일에 어눌해 보이는데...... 선생님 총각 때는 23년 동안 가톨릭 신자로 세례명은 바오로셨단다. 그런데 사모님과 결혼을 하면서 불교에 입문하셨단다. 두 분이 동국대 불교학과를 나오시고, 계속 준비를 하고 있다가 정년퇴임하고 머리를 깎으셨단다. 두 분 모두. 선생님은 이름만 주지스님이고, 실제 일은 사모님이 다 하신단다. 선생님 마음 속에는 부처님도 있고 예수님도 있고~ 모두 하나라고 하신다. 얼마 전에는 가톨릭 행사장에도 다녀오시고. 선생님과 사모님의 호 한자씩을 따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참..

문상을 다녀와서

온양 큰댁에 당숙님깨서 올해 90세로 먼길을 가셨다. 위독하다는 말씀 듣고 서울 병원에 오셔서 문병 다녀온지가 10 여년은 족히 되었는데, 이제사 돌아가신 거다. 온전히 자리 보존한 것이 4년 되었다고 한다. 내가 시집 가서 처음 아버님 사촌계에 간 것이 이, 온양 큰댁이다. 마당 넓은 한옥에 정갈한 음식하며, 두 분 인품이 참 좋아보였다. 그 후 집집마다 돌면서 치르던 아버님의 사촌계는 몇 해 지나 음식점으로 돌더니... 이젠 모두 연로하셔서 그만이 되었다. 91세인 당숙모님은 병수발로 기진하신 모습이었는데, 오늘 뵈니 맑은 얼굴이다, 어제부터 장례식장 바로 옆 방에서 잡숫지도 눕지도 않으신다. 앉아 계시는 모습이 아직도 기품이 있으시다. 내가 손을 잡고 곁에 앉으니 가서 뭐 좀 먹으라며 등을 떠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