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사람이랑 850

묘지의 가을

지인의 결혼식이 끝나고 후배가 낙엽 밟으러 가자한다. 후배가 자주 오는 곳이라고 한다. 자작나무가 구차하게 서있다. 북구에서 숲으로 보던 나무라서 이렇게 몇 그루 서 있는 것을 보면 영 안쓰럽다. 저 벗은 몸도 추워보이고.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무덤의 모습이다. 아무런 치장 없는, 저 둥근 선이 엄마의 젖무덤 같다. 그 위에 살픈 얹힌 단풍이 그만이다. 올려다본 단풍은 가을내를 물씬 풍긴다. 아주 좋은 자리에 널찍하게 자리 잡은 묘지 앞에 붙여진 팻말이다. 자손이 외국으로 갔거나... 관리가 되지 않은 호화분묘(?) 앞에서 많은 생각이 오고간다. 나는 내게 침 뱉을 무덤은 남기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난 이미 갈 자리가 정해 있으니까. 무덤을 둘러싼 잔디 뒤로 늘푸른나무가 생경스럽다. 제각각의 색으로 제..

조카 별장

하루하루가 그야말로 쏜살같이 지나간다. 아무 일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에 감사햐야하겠지만, 왜 이리 공허한지. 나를 위한 시간을 몽땅 도둑 맞고 있는 요즘이다. 그 도둑, 아니 도둑들에게 기꺼이 충성을 다하리라 다짐했건만 무시로 솟아오르는 무엇이 나를 흔든다. 친정 장조카가 용인에 별장을 마련했다고 초대했다. 마당에 자그마한 연못도 있고, 성능이 시원찮지만 황토방도 있고. 무엇보다 강점은 그 동네가 성지순례 코스이며 집에서 가깝다는 것이다. 주말에 이곳에서 지내는데, 여기서 자고 나면 몸이 가벼워진단다. 옛날 생각도 나고. 취중에서 오간 이야기지만 오늘 조카한테 들은 을 거듭 생각한다.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운이 따라주고, 운이 따르면 세력이 이루어지고, 세력을 이루면 명을 내릴 위치에 다다르게 된다. 또..

요즘

식구가 늘어서 절간 같던 집이 정신없이 북적인다. 일본에서 외손주와 딸이 와 있으니 4대가 한지붕 아래 있다. 아버님 말씀에 의하면 "우리 아이들은 외할머니가 다 키워줬다." 친정에서 늦둥이인 내가 아이를 낳았을 때, 우리 엄마는 오직 우리 아이들 한테 전력투구하셨다. 조카들은 이미 다 크고, 엄마가 돌봐줘야 할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 어릴 때 오셔서 봐주거나, 일주일 정도씩 데려가서 봐주셨다. 그러나 지금 내게는 달린 식구가 너무 많다. 시답잖은 글도 써야하고, 가끔씩 딴짓거리도 해야 숨통이 트이고, 아직은 흥미로운 공부도 해야 하고. 어쩔수 없는 날라리 할머니가 되겠지만... 하는데까지 열심히 해 볼 생각이다. 십삼 개월 된 이 녀석, 아직 말 문도 안 열린 이 천사는 내 속을 다 아는 것 같..

40년 만에 만난 선생님

중학교 2학년때 담임선생님을 찾아 뵈었다. 그때 같은 반 친구 둘과 함께. 정년퇴임하시고 김포에 절을 지으시고 스님이 되셨다. 77세 되신 선생님은 예전보다 더 맑은, 아기같은 얼굴이다. 국어 선생님답게 세상 일에 어눌해 보이는데...... 선생님 총각 때는 23년 동안 가톨릭 신자로 세례명은 바오로셨단다. 그런데 사모님과 결혼을 하면서 불교에 입문하셨단다. 두 분이 동국대 불교학과를 나오시고, 계속 준비를 하고 있다가 정년퇴임하고 머리를 깎으셨단다. 두 분 모두. 선생님은 이름만 주지스님이고, 실제 일은 사모님이 다 하신단다. 선생님 마음 속에는 부처님도 있고 예수님도 있고~ 모두 하나라고 하신다. 얼마 전에는 가톨릭 행사장에도 다녀오시고. 선생님과 사모님의 호 한자씩을 따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