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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을 쓰려면 / 맹난자

칠부능선 2023. 3. 5. 11:56

좋은 수필을 쓰려면 

맹난자

 

 

수필은 산문이다. 산문은 뜻글이다.

물건을 사려면 돈이 필요하듯 글을 쓰려면 뜻을 써야 한다.” 이것은 중국 문장가 소동파의 말이다. 수필은 붓가는 대로 쓰는 글이 아니다. 우리가 편지 한 장을 쓸때에도 말의 앞뒤와 차례를 생각하거늘 어찌 문학 작품에 있어서이랴. 발레리는 시를 춤에 비유하고 산문(수필)도보徒步에 비유한 적이 있다. 시는 목적 없이 흥겨우면 춤을 추지만, ‘도보는 의도된 행선지를 따라 길을 걷는다. 수필의 경우에 의도된 행선지란 쓰고자 하는 글감의 주제의식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수필은 짧은 형식의 글이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면 주제의식이 분명해야 한다.

 

주제에 대하여

주제나 제재는 글속에 하나만 있는 게 좋고 주제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법위를 넘지 않아야 한다. 글의 내용이 소화 가능한 것이라야 한다. 언젠가 헤밍웨이는 글쓰기의 비결에서 자신이 써야 할 내용의 70%는 감추고 빙산의 일각처럼 30%만 드러낸다면 감춰진 부분은 독자가 찾아 읽게 한다는 것이다. 영리한 독자는 행간에 숨은 70%를 기쁘게 찾아 읽는다. 그러나 노파지심이 많은 나 같은 사람은 구구절절이 늘어놓다가 글이 그만 중언부언 되고 만다. 글감에 대한 정리가 충분하지 않은 탓이다. 많은 시간이 걸려 주제가 숙성되고 여과되었을 때 위에 고이는 물, 그것이 바로 30%에 해당하지 않을까.

수필은 인생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그러므로 무엇을 보느냐하는 것보다 어떻게 보느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무엇이라는 소재가 인생을 이야기하는 데 소용되는 자료에 불과하다면 어떻게는 작가가 인생과 우주를 바라보는 눈, 즉 그 작가만의 견처見處로서 주제에 대한 해석과 작가의 인생관을 그대로 드러낸다고 하겠다.

일본의 선승이자 시인인 료칸 선사는 임종에 이르러 겉도 보이고(현상) 속도 보이며(본체) 떨어지는 단풍이여로 자신의 전 존재를 구명하는 하이쿠를 남겼다. 생을 마감하며 떨어지는 낙엽은 죽되 죽지 않는, 자신의 진아眞我를 상징한다. 현상과 본체에 대한 도리道理를 색즉시공色卽是空으로 설파한다. 이처럼 새로운 해석을 위해서는 작가만의 성숙된 인생관이 요구된다. 글은 속일 수 없는 작가 그 사람이다. 자신의 키를 넘지 못한다. 좋은 수필을 쓰기가 어려운 이유도 바로 작가의 가치가 그대로 작품의 가치로 환치되기 때문이다. 인격수양과 인간에 대한 이해 그리고 내면의 풍부와 사물에 대한 깊은 통찰은 좋은 수필을 쓰기 위한 기본 덕목이라 하겠다.

 

 

좋은 수필의 조건

어떻게 하면 좋은 수필을 쓸 수 있을까? 필자의 오랜 소망이기도 한 것을 위해 여러 선배들의 충고를 모아보았다.

김태길 선생은 <좋은 수필의 조건>에서

문장에는 문학적 향기가 가득하고, 내용에는 철학적 깊이를 느끼게 하는 글이 좋은 수필이라고 언급한다. 문학적 향기는 아무래도 글쓴이의 인품과 비례할 테고, 철학적 깊이는 작가의 내공과 관련되지 않을까. 철학적 깊이는 하루아침에 뚝딱채워질 수 있는 물통의 물이 아니다. 거기에는 부단한 사색과 조용한 관조와 끊임없는 독서, 그리고 체계적인 문,,文史哲의 인문학 공부가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생각만 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위태롭다라는 <논어>의 구절을 수필로 가져오면 생각만 많이 하고 밑바탕이 되는 공부가 없으면 글이 쑥처럼 온 들판에 얕게 퍼져 벼리(중심사상)

가 서지 않을 위험성이 있는 경우와 같다. 사유를 뒷밭침하는 독서는 과학적 근거, 문학적 전거가 되어 글의 뼈대를 튼튼하게 해줄 것이다.

 

윤오영 선생은 수필 쓰기를 양잠설에 비유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사람 재주는 비상한데, 밑천이 없어서뽕을 덜 먹었다는 것이다. 독서의 부족을 말한다.

그 사람 아는 것은 많은데, 재주가 모자라잠을 덜 잤다는 것이다. 사색의 부족과 비판 정리가 안 된 것을 말한다.()

그 사람이야 대가지, 훌륭한 문장인데 경지가 높지 못해고치를 못 지었다는 것이다. 일가一家를 완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양잠가에서 문장을 배웠다.  

윤오영 선생의 양잠설에서 나도 큰 깨우침을 얻었다. 그동안 나의 독서라야 일관성 없는 남독에 불과하였고 이제야 작가의 사상과 문학의 연계성을 짚어보다가 겨우 그 뿌리의 연원을 짐작이나마 하게 된 것이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영적靈的인 실재를 믿으며 자기 내면의 신성神性을 느끼고 더 큰 영혼과 소통해야 한다고 외친 콩코드의 철학자, 에머슨의 사상은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에게 닿아 있었다. 스토아학파의 철학자인 황제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고, 존재하는 것은 유전流轉하며 이것은 완벽하게 자연의 지배를 받는 것으로 인간 속에 있는 신성을 통해서 인간은 발전할 수 있는데 그 신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과 에머슨의 자연론, 소로의 윌든, 까뮈의 시시포스의 신화, 몽테뉴의 수상록은 모두 훌륭한 수필집이다. 몽테뉴의 철학은 고대 철학가 에피쿠로스, 호라티우스, 루크레티우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외친 프로타고라스 외에도 키케로와 세네카를 애독했고, 에머슨과 소로는 바가바드 기타, 유교, 힌두이즘의 동양철학에 심취하였다. 그들의 수필이 철학에 뿌리를 기댄 연유를 알 수 있었다.

수필은 어떻게 쓸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쓸 것인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왜냐하면 수필은 뜻글이기 때문이다. 글 짓는 솜씨가 아무리 빼어나도 글감(사상)이 부실하다면 튼실한 고치집은 기대하기 어렵다. 글감(주제의식)도 좋고 고치집도 튼실하게 지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따 놓은 당상이다. 무엇을 쓸 것인가는 주제의식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요청한다. 왜냐하면 주제는 결국 인간을 묻는 철학적 사유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써야 하는가?

수필은 짧은 형식의 글이기 때문에 효과적 전달을 위한 고도의 형식과 기교의 구성을 필요로 한다. 한마디로 서술 전략이 필요하다. 수필 쓰기에 있어 진술방식은 묘사와 서사가 주로 동원된다. 묘사는 모양이나 빛깔, 소리, 냄새, , 촉감 같은 것을 그려 보이는 진술이다. 오관을 통한 사물의 체험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감각적 표현 능력이야말로 문학적 감수성과 연관된다. 감수성도 훈련이 필요하다. 미술, 음악, 연극 등 예술 전반에 대한 이해와 접촉이 있어야 한다. 서사敍事는 사건을 이야기해 들려주는 진술방식이다.

문장표현은 과감한 생략과 함축으로 설명이 아닌 비유 언어로 이미지 형상화에 성공을 거두어야 한다. 수필은 우리의 선별된 체험을 그대로 나열하는 게 아니라 문학적 경로를 통해 하나의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야하기 때문이다. 삶의 이야기가 문학이 되고 예술이 되려면 그것은 문학적 언어로 가공되고 재창조되어야 함을 말한다.

프랑스의 비평가 알바레스 교수는 그의 저서 20세기 문학의 총결산에서 수필은 지성을 바탕으로 한 정서적, 환상적 이미지의 문학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환상적 이미지의 문학이 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공급되어야 하고 자연히 형상화의 문제가 뒤따른다. 국어사전(민중서관)에도 문학은 정서사상의 힘을 빌어서, 언어 문자로써 표현한 예술 및 그 작품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키워드는 사상이다. 상상은 문학의 필수 조건이다.

 

상상력에 대하여

상상력을 통해서 전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그것은 예술성을 잃게 되고 만다. 기록은 문예수필이 될 수 없다.

시인이 시인인 것은 오직 은유의 영역에서 뿐이다라고 한 왈레스 스티벤스의 말대로 시인이 사용하는 기법은, 상상력을 동원한 상징과 은유로써 이미지의 창출에 있다. 은유를 사용하는 능력은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이며 유사성을 포착해 내는 탁월한 직관력이다. 예를 들자면 가을부채秋扇는 철 지난 여성으로 퇴기를 상징한다.

이미지란 우리 마음의 세계에 한 폭의 그림처럼 떠오르는 구체적인 형태를 의미한다. 심상心象이라든가, 영상映像이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어떤 사물 어떤 사실을 실감 있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그 사물의 형태를 재현시켜 주고 사물의 현상을 눈으로 보듯 구체적으로 묘사해야 한다. 이것을 형상화, 즉 이미지화라고 한다. 형상화란 감각이 포착해낸 것을 그려내는 일이다. 감각적 체험과 관계가 있는 일체의 낱말은 모두 심상이 될 수 있다. 심상은 구체어에 자극 받아 기억되거나 상상되는 감각적 경험이다. 자신의 슬픔이나 분노까지도 문학에서는 감각적 구체어로 표현해야 한다. 지리산 전투에서 몇 백 명의 민간인이 학살되었다는 기사보다는 단 한 명일지라도 그가 학살되는 장면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모습, 그 자리의 비명소리와 붉은 피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글이 더 많은 공감을 전해 준다. 독자는 그런 것을 원하다.

수필 작법에 문제를 제기한 김우종 선생은 상상적 기법의 부재를 거론하며 픽션인 소설과 달리 수필의 기본은 사실fact이므로 꾸며 쓴 허구가 아닌, 상상의 힘을 빌어 예술의 감동을 증대하자는 수필의 예술성을 강조한 바 있다. 모든 예술분야가 지닌 미적 감동의 근원은 상상력에서 생기는 것, 그러므로 수필이 찾아야 할 요건은 상상력의 세계이다. 그리고 수필의 과제는 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미지의 창출이다. 표현방법의 핵심은 상상력을 유발시키는 이미지의 성공 여부에 의한다.

좋은 수필, 아름다운 수필을 쓰려면 감동을 주는 장치를 만들어야 하며 그 장치는 곧 상상의 세계라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영국의 수필가 조셉 에디슨은 상상의 즐거움이라는 평론에서 상상은 감각의 대상이 없을 때에도 머릿속에서 심상心象을 만들어가며 여러 심상들을 융합하여 전혀 새로운 심상으로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덧붙였다. 수필 작법에 아주 긴요한 조언이다.

문예사가들은 수필을 미래의 문학으로 손꼽는다. 그것은 IQ보다 EQ가 중시되는 시대에 수필은 정서적 만족을 수여하는 EQ의 문학이기 때문이다. 정서순화와 일심의 청정. 한 사람의 청정한 마음이 곧 맑은 공기처럼 온 인류의 마음을 조용히 정화시킬 수 있다.

한 편의 수필이 세계 평화에 기여하게 될 날을 기다린다. 수필은 그런 문학이다. 마테를링크의 뒤를 이어 수필에서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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