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 - 발표작

하늘 요양원

칠부능선 2020. 5. 28. 18:35

하늘 요양원

노정숙

 

 

여름이 오기 전, 터널에 들어갔다

삽시에 아기가 된 노인이

거친 바닥을 드러낸다

아기는 아기가 아니다

통제 불가능한 힘이 솟구친다

아기의 지팡이가 춤을 추면 검은 멍꽃이 퍼진다

흰옷을 입은 처자들은 멍을 어루만지며

통제와 회유를 번갈아 처방한다

까무룩 정신을 놓기도 차리기도 하면서

어둔 터널 속을 걷는다

시간은 한없이 느리게 흐르고 숨이 막혀올 즈음

희미한 빛이 보인다

향기 없는 하얀 꽃무리가 아기를 품는다

어루만지고 쓰다듬는다

악령 든 노인이 슬그머니 사라진다

오소소 소름이 돋고 냉기가 휘감는다

밖은 폭염일 게다

소나기가 올까

아직 출구는 멀다

 

 

<문학사계> 여름호 (통권 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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