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 - 발표작

고전적 정수기 / 침묵 - 노정숙

칠부능선 2022. 6. 16. 00:21

 

고전적 정수기

노정숙

 

 

모던한 아파트 주방 안쪽에

둥글넙적한 물항아리가 턱 앉아계신다

아침이면 환하게 엘이디 등불을 물 위에 띄우신다

어미는 고개 숙여 물 한바가지 퍼올린다

저 지극하게 굽은 어미의 등,

모든 어미는 머리 조아리기 선수다

! 조왕신이 기침하신다

 

 

 

 

 

 

 

 

침묵

노정숙

 

 

반복하는 묵음 연주, 존 케이지의 <433>에 빠졌다. 고요 속에서 내 숨소리와 한숨소리 모든 숨 붙은 것들이 만들어내는 격렬한 음을 느낀다.

 

몸 안 톱니바퀴는 곳곳이 헐거워져 느리게 돌아간다. 나는 나사를 조이려 조바심치지 않는다. 낡아서야 벙그는 묵음의 세계, 위로의 손길이 스민다.

   

<창작산맥> 2022년 여름호. 통권 40호